당시 박람회장은 와인 애호가로 인산인해였다. 참관객들은 평소 접하기 힘든 와인을 잔뜩 구매하기 위해 저마다 대형 캐리어를 들고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전시장 밖에서도 부산은 ‘와인과 바다’의 도시다. 곳곳에서 와인바와 전문 판매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국내 와인 시장 성장세가 더뎌지긴 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수요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눈에 띄는 건 뉴질랜드 와인의 성장이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뉴질랜드 와인 수입액(2536만 달러)은 전년 대비 55% 증가했다. 특히 화이트 와인 부문에선 물량 기준 25.6%를 차지해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사실 뉴질랜드는 오래 전부터 한국 와인 시장 진출에 공들여 왔다. 주한 뉴질랜드 상공회의소(이하 ‘키위 챔버’)가 2009년부터 국내에서 와인 페스티벌을 개최해 온 것이 대표적이다. 키위 챔버가 매년 개최하는 행사에선 다양한 종류의 뉴질랜드산 와인들을 고급 안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쉽게 말해 ‘와인 뷔페’인 것이다. 개최지는 서울과 부산, 두 곳이다. 지난달 서울에 이어 부산에서 열린 이 행사에 ‘와린이’인 기자도 참석해봤다.
‘2025 뉴질랜드 와인 페스티벌 부산’은 예년처럼 해운대구 파크하얏트 호텔 2층 그랜드 볼룸에서 열렸다. 행사 시작 시각인 오후 6시가 되자 1층부터 2층을 향하는 계단에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을 정도로 참관객이 몰려들었다. 티켓 가격은 꽤 나간다. 키위 챔버 회원과 그룹 참가자(8명 이상)는 1인당 17만 원, 비회원은 19만 원, 현장 결제는 20만 원에 달한다.
행사가 열리는 안쪽 로비로 발걸음을 옮기자 각양각색의 디저트가 눈길을 끈다. 방파제 모양의 테트라포드 초콜릿, 마카롱, 각종 케이크와 과일 등 와인과 페어링하기 좋은 핑거푸드를 마음껏 고를 수 있다. 또 물회, 참치 타르타르, 하몽과 같은 안주도 마련돼 있다.

로비 안쪽 홀로 이동하면 본격적인 ‘와인 파티장’이 열린다. 뉴질랜드 최상급 와이너리(와인 양조장) 20여 곳에서 생산된 와인들을 시음할 수 있다. 기자는 국내서 인기가 많은 화이트 와인을 위주로 시음해 봤다. 인상 깊었던 와인 몇 가지만 소개한다. 빈티지(포도 수확 연도)는 대체로 2020~2022년이었으며 와인별 자세한 표기는 생략한다.
‘히피’(HEAPHY)의 소비뇽 블랑은 신선한 첫맛에 가벼운 바디감이 특징이다. 산미와 함께 어우러지는 미네랄의 느낌이 산뜻하다.


‘언츠필드’(AUNTSFIELD)의 ‘싱글빈야드 샤도네이’는 프렌치 오크 발효와 숙성을 거쳤다. 업체 측은 ‘묵직하고 매끈한 샤도네이의 전형’이라고 소개하는데, 실제 맛을 보니 가벼우면서도 향긋한 향이 싱그러운 느낌이다.
‘러브블럭’(LOVEBLOCK)의 ‘말보로 티 소비뇽 블랑’은 풍미가 독특하다. 이산화황을 비롯한 첨가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이름처럼 녹차의 타닌 추출물을 사용했다. 녹차 향 덕분에 뒷맛이 깔끔하고 여운이 남는다. 기자와 함께 시음한 행사 참가자도 “이 와인은 특이하다”며 재차 맛을 봤다.


‘오하우 와인즈’의 ‘워번 스톤 피노 그리’도 기억에 남는 맛이다. 피노 그리는 피노 누아의 화이트 와인 버전이다. ‘코리아 와인 챌린지’에서 화이트 와인 부문 전체 1위를 기록했다. 타닌감이 적고 목 넘김이 부드러우며, 산미는 강하고 당도는 낮다. 전체적으로 산뜻한 느낌이 좋아 데일리 와인으로 제격이다.
이날 행사장에선 이 외에도 ‘하하 와인(HAHA WINE)’, ‘빌란 치아(BILANCIA)’, ‘모지 와인즈(MOZZIE WINES)’, ‘스톤 베이’(STONE BAY), ‘테 아왕가(TE AWANGA)’ 등 다양한 와이너리의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백화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클라우디 베이(CLOUDY BAY)’는 인기가 높아서 준비한 물량이 일찍 동나기도 했다.


행사장엔 육류와 해산물 등 파크하얏트 호텔에서 제공하는 미식도 많았지만, 와인 애호가들에게 더 인기 있었던 것은 치즈였다. ‘치즈 알못’인 기자 입장에선 특유의 꼬릿꼬릿한 향과 쓴맛을 풍기는 치즈부터 달달한 크림 치즈까지 맛보면서 입맛에 맞는 치즈를 파악할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다만 이들 음식과 와인을 자리에 편하게 앉아서 즐길 수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애초 마련된 테이블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도 의자에 앉는 것이 아니라 선 채로 먹어야 한다.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주최 측에서 제공하는 글라스 목걸이에 와인 잔을 걸고, 두 손으로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으면 테이블 없이도 만찬을 즐길 수 있다. 다수 참가자들도 이미 익숙한 듯 행사장 곳곳에 삼삼오오 선 채로 음식과 와인을 즐겼다.
또 자연스레 다른 참가자들과 합석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참가자들의 반은 외국인이라 분위기가 이국적인데, 그 덕분인지 기자도 처음 보는 이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부대행사도 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 전통 하카 공연과 라이브 DJ 쇼가 분위기를 한층 돋우었다. 행사 막바지에는 호텔 패키지와 뉴질랜드행 항공권 등 경품을 추첨하는 래플(추첨식 복권) 이벤트로 대미를 장식했다.

뉴질랜드 와인 페스티벌은 매년 이맘때쯤 열린다. 티켓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 참가해 볼 만하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4시간 동안 다양한 와인을 맛있는 안주, 근사한 광안대교 야경과 함께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행사는 흔치 않다. 관심이 있는 이들은 내년 행사는 놓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