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냉면과 막국수 각자의 길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한국인들이 메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효석이 쓴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한 대목이다. 강원도 봉평에서 자란 이효석은 서울로 유학한 뒤 고향을 그리는 소설을 썼다. 그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대부분의 메밀은 지금도 봉평으로 향한다. 우리나라 메밀 재배면적의 87%를 제주가 차지하지만, 국산 메밀 가공 산업의 중심이 봉평이어서다.
백석이 쓴 시 ‘국수’가 평양냉면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한다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 메밀향에 대한 비유가 참 절묘하다. 백석이 평안도를 여행하며 쓴 기행시 ‘북신(北新)’의 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북신을 비롯해 백석의 고향인 평안북도는 예로부터 메밀을 많이 재배해, 냉면이 발달한 지역이었다.

평양냉면과 강원도 막국수는 어떻게 다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냉면의 본산 평양에서는 메밀 겉껍질을 완전히 벗겨 하얗게 만든 면은 냉면, 겉껍질이 섞여 검게 보이는 면은 막국수 혹은 흑면(黑麵)으로 구분해 불렀다. 막국수의 ‘막’은 거칠다는 의미로, 특별히 다듬지 않고 ‘막’ 해 먹는 국수라는 뜻이 담겼다. 냉면과 막국수는 원래 같은 계열의 음식이었다가 껍질을 말끔히 도정한 세련된 면은 평양냉면, 거칠고 투박하게 막 뽑아낸 면은 막국수라는 이름으로 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냉면이 원래 겨울철에 먹던 별미였던 데도 이유가 다 있었다. 냉면에는 차가운 동치미 국물이 필요하고, 또한 여름 메밀은 맛이 없기 때문이다. 가을에 수확하는 메밀이 여름 메밀보다 맛과 향이 훨씬 뛰어나다. 냉면이 사계절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남한으로 전해지면서부터다.
춘천시가 발간한 <춘천백년사>는 막국수의 유래를 구한말 의병 봉기 시기로 밝히고 있다. 의병 가족은 산으로 몸을 피해 화전을 일궈 연명해야 했다. 춥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을 막 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평양냉면은 기본적으로 양념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면과 육수 자체의 맛을 은근하게 즐기도록 세련되게 설계되었다. 막국수는 반대로 양념장이 핵심이다. 고춧가루, 마늘, 간장, 참기름 등이 들어가 칼칼하고 고소한 맛을 낸다. 막국수는 강원도의 자연을 생각나게 만드는 시골밥상 같은 매력이 있다. 메밀은 중국에서 한반도, 대마도를 거쳐 일본에 전해졌다고 알려진다.
■메밀에 미친 요리사 김정영
자가 제면한다는 이야기는 가끔 들어 봤어도 제분에 이어 메밀 재배까지 직접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게다가 세계적인 메밀국수(소바) 천국 일본의 수도 도쿄에 진출해 메밀로 승부를 걸어보겠다니, 이 정도면 메밀에 미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2009년부터 해운대에서 ‘면옥향천(麵屋香川)’을 운영하는 김정영 대표 이야기다.
음식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치를 챘겠지만, 상호의 향천(香川)은 일본에서 우동으로 가장 유명한 가가와현(香川県)에서 가져왔다. 김 대표가 메밀을 제대로 만지기 전에 주력했던 분야는 밀가루로 만든 우동이었다. 그가 만든 어른 새끼손가락 굵기의 탱글탱글한 우동면은 한국에서 최고라고 할 정도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고혈압과 당뇨가 있던 김 대표의 아버지는 우동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고 늘 절반을 남겼다.
가족에게도 맘 편히 권하지 못하는 음식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어느 날부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매일 먹어도 괜찮은 음식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찾은 게 바로 메밀이었다. 메밀은 혈압 억제에 효능이 있는 루틴 함량이 높아 고혈압 환자의 식이요법에 사용된다. 또한 메밀의 카이로이노시톨 성분은 혈당을 낮춰 당뇨환자에게 좋다.

메밀 공부는 끝이 없었다. 메밀에서 원하는 맛과 색깔이 나오지 않아 답답했다. 제일 잘 하는 평양냉면집에 들어가는 메밀가루를 써도 일본에 비하면 맛이 없었다. 좋은 메밀을 구하느라 전국을 헤매고 다니다 통메밀을 직접 갈아서 쓰기로 했다. 그런데 원하는 크기의 맷돌이 보이지 않았다. 시판 맷돌은 크기가 작아 가게에서 쓸 물량을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포기할 김 대표가 아니었다.
맷돌을 주문해서 만들고 설치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단단하면서 열이 덜 나는 거창석(거창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메밀 향은 열에 매우 약해 제분 과정에서 마찰열이 발생하면 쉽게 날아가기 때문이다. 맷돌로 직접 제분하니 좀 더 깊은 메밀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갈고 나서 이틀만 지나면 날아가는 메밀 향을 더 붙잡고 싶었다.
메밀 종자 몇 개를 구해다 2012년부터 충남 논산의 농지 3000평을 빌려 직접 재배를 시작했다. 메밀 농사가 거듭되자 상태가 좋아지고 수확량도 늘었지만 막상 갈아보면 향이 엷었다. 땅이 안 좋은가 싶어서 전주로 옮겨 제주도 메밀을 심었다. 좀 낫긴 했지만 여전히 성에 차지 않았다. 메밀은 서늘한 기온과 높은 일교차를 통해서 향이 깊어지니 북위 40도 이상이 되어야 기후조건이 맞아진다. 한국에서는 한라산 중산간(해발고도 200~600m)이 되어야 비슷하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북한의 개마고원에서 메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진짜 한번 해볼 만할 것 같았다.

2018년에는 북베트남 하장성 몽족 거주지에서 붉은 꽃이 피는 메밀 씨앗을 구해왔다. 수도 하노이에서 버스로 7시간 걸려 최북단 산악 지역인 하장에 도착한 뒤 다시 오토바이를 빌려 8시간을 달린 험난한 여정이었다. 30년 가까이 마라톤과 철인3종 경기를 해왔으니, 체력적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원하는 메밀을 손에 얻으니 뿌듯했다.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 선생 생각도 났다. 지금은 3년 전부터 술도 끊고 면을 비롯한 음식 공부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 국내 자료만으로는 부족해 일본 원서를 본다. 제대로 일어를 배운 적이 없으니 그림과 사진으로 먼저 이해하고, 모르는 글자는 사전을 뒤져가며 하나씩 맞춰 나가는 식이라 진도가 빠르지는 않다.
김 대표는 “좋은 메밀면이 나오는 데는 좋은 밀과 좋은 메밀, 좋은 물, 향을 살려 제대로 한 제분, 좋은 설비와 좋은 기술,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문화와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경남 의령에 마련해 둔 최고 수준의 족타 반죽기와 제면기를 갖춘 제면 공장이 가동을 앞두고 있다. 김정영의 면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기대가 된다.

■부산의 메밀국수 맛집은
부산에서 메밀국수로 가장 전통 있는 음식점을 꼽자면 ‘중앙모밀’과 ‘원조18번완당’이다. 중구의 중앙모밀은 1956년에 중앙손국수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70년 전통을 자랑한다. 이제는 표준어가 아닌 ‘모밀국수’라는 메뉴를 고수하면서 맛도 변하지 않아 오래된 단골이 많다. ‘모밀냄비’를 시키면 따뜻한 온메밀을 즐길 수 있다. 서구의 원조18번완당은 완당 외에도 ‘발국수’라고 부르는 메밀국수가 인기 메뉴다. 메밀죽처럼 메밀국수를 가난한 음식으로 여길까 봐 대나무 발의 이름을 따서 발국수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지금 자리에서는 1956년에 문을 열었고, 보수동 포장마차 시절을 포함하면 역사가 194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해운대구 ‘뫼밀집’은 2026 미쉐린 빕구르망 식당에 선정됐다. 제면실을 갖추고 100% 국내산 메밀, 소금, 물 3가지만 가지고 메밀면을 자가 제면한다고 강조한다. 물메밀국수와 비빔메밀국수가 1만 6000원으로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느낌이다. ‘무스비’는 해운대 해리단길에 위치한 소바 전문점으로 구운 고등어가 든 ‘사바소바’와 청어 간장조림의 ‘니싱소바’가 인기 메뉴다. 등푸른 생선들이 국물에 담겼는데도 전혀 비리지 않고 조화로운 맛이 난다. 메밀 80%와 밀가루 20%를 혼합한 ‘니하치 소바’를 낸다.

수영구 ‘주문진교항리막국수’는 신흥 막국수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1대 강릉 주문진 교항리, 2대 부산진구 범천동에 이어 3대가 손맛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깊은 육향의 평양식 막국수를 먹다 보면 냉면과 막국수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수영 ‘주와리소바’는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국산 메밀 100%로 만드는 주와리(十割) 소바를 선보이며 자리 잡았다. ‘밀면 천국’ 부산에서도 평양냉면집을 비롯해 꽤 괜찮은 메밀국숫집들을 찾을 수 있다. 그만큼 부산 미식 세계가 다양화되고 있는 모습이 반갑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