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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보세창고서 거듭난 영도 '스페이스 원지'

영도 초입 봉래나루 끝자락 위치
100년 전 창고 원형 그대로 보존
물양장 등 가장 부산다운 풍경 자랑
레스토랑·창고 등 1100평 규모

김보현 대표 "재미난 일 하고 싶어"
지난해 '부산 유니크 베뉴'로 선정
전시·공연·플리마켓 등 행사 다채
11월부터는 '부산 재즈 포트' 시작
환하게 불을 밝힌 스페이스 원지 외관. 정대현 기자 jhyun@
환하게 불을 밝힌 스페이스 원지 외관.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에서 물양장 쪽으로 바라본 모습.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에서 물양장 쪽으로 바라본 모습.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로 들어서는 초입부의 봉래나루로는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사람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핫플레이스다. 낡은 보세창고가 즐비한 이 일대 물양장(수심 4~5m 이내로 1000t급 미만의 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간이 부두)은 가장 부산스러운 풍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의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 ‘모모스커피 영도 로스터리&커피바’와 커피복합문화공간 ‘블루포트 2021’이 2021년 이곳에 문을 열었고, 그보다 앞서 2019년 3월엔 로컬 생활문화 공간 ‘무명일기’가 일찌감치 터를 잡으며 이 일대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봉래나루로 끝자락 홈플러스 영도점 쪽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원지(SPACE ONE Z)는 이들 중에는 가장 늦은 2023년 3월 13일 가세했다. 원래는 2020년 오픈하려다 코로나19로 미뤄졌다. 이번 주 ‘문화핫플’은 스페이스 원지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스페이스 원지 레스토랑과 정원 모습.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레스토랑과 정원 모습.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창고동에서 2025 부산국제사진제가 열리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창고동에서 2025 부산국제사진제가 열리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레스토랑 실내 모습. 통창 너머 수리 중인 선박들이 보인다.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레스토랑 실내 모습. 통창 너머 수리 중인 선박들이 보인다. 정대현 기자 jhyun@


창밖엔 물양장…영도의 시간을 품은 공간

낡은 보세창고를 개조한 스페이스 원지는 통창 너머로 보이는 물양장과 선박이 정박 중인 풍경도 독특하지만, 100년 전 창고 원형을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원지의 경우, 총 7개의 창고를 터서 지금처럼 만들었다. 현재는 레스토랑 1동(303평)과 3개의 창고(539평, 103평, 152평 등 794평 규모) 등 약 1100평 규모로 운용 중이다. 3개의 창고는 전시나 공연, 팝업 행사 등으로 변신을 거듭하지만, 행사가 없을 때는 평범한 주차장이다.

“2016년인가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 갔다가 한때 소련의 재봉 공장이었던 곳을 개조한 문화 공간인 ‘파브리카 트빌리시’에서 젊은이들이 맥주를 마시며 밤새 토론하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어요. 나도 언젠가는 저런 곳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게 지금의 스페이스 원지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스페이스 원지 김보현 대표의 말이다.

스페이스 원지 레스토랑과 창고동 사이 정원이다. 김 대표가 매일 출근하자마자 정원 가위를 들고 가꾸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레스토랑과 창고동 사이 정원이다. 김 대표가 매일 출근하자마자 정원 가위를 들고 가꾸는 공간이기도 하다. 정대현 기자 jhyun@


이제 겨우 개관 2년을 넘겼지만, 시행착오도 있었다. 미슐랭 3스타 호텔 출신 셰프를 초빙한 게 대표적이다. “테이블 욕심을 내면서 밥집이 되어 버렸다”는 말로 김 대표는 에둘러 표현했지만, 적잖이 마음고생을 한 듯했다. 한때 28명까지 근무했던 직원은 현재 15명으로 줄였다. 30대가 주축이고, 40대가 2명이다. 김 대표를 제외한 대부분의 직원이 젊다. 김 대표는 친환경 자동차에 엔진 소재를 공급하는 기업체를 경영 중이어서 이 회사에선 월급도 받지 않는단다.

“지난해 쿠팡에서 한 달에 5000만 원을 주겠다며 899평 임대를 제안했는데도 안 줬어요. 그렇게 되면 재미난 건 못 하잖아요. 돈이 다가 아니잖아요. 사실 그때는 한 달에 5000만 원씩 까먹고 있을 때였는데…(하하).” 그러면서 김 대표는 말을 이어 갔다. “부산시도 이곳에 800평 규모의 미술관을 짓고 싶어 했는데 두 달 정도 고민하다 거절했어요. 재미있는 일을 하려고요.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을 하고 싶어서요. 젊은이들이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시작한 일인 만큼 그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이런 뚝심이 통했는지 부산관광공사는 스페이스 원지를 2024년 부산 ‘유니크 베뉴’로 선정했다. 유니크 베뉴는 ‘독특한’(unique) ‘장소’(venue)의 합성어로 부산관광공사가 2022년부터 선정해 오고 있다. 마이스 전문시설은 아니지만 관련 행사 개최가 가능하면서도 지역 특색을 잘 반영한 장소라고 설명한다.

2025 부산국제사진제가 열리고 있는 스페이스 원지 창고동 실내 풍경. 정대현 기자 jhyun@
2025 부산국제사진제가 열리고 있는 스페이스 원지 창고동 실내 풍경. 정대현 기자 jhyun@
지난 6월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김이오 개인전' 설치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6월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김이오 개인전' 설치 전경.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3월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문화경청 시민워킹그룹 킥오프(Kick Off) 회의’ 그룹별 토의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 3월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문화경청 시민워킹그룹 킥오프(Kick Off) 회의’ 그룹별 토의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공간미 특출해 행사·전시 장소 ‘인기’

공간을 연 지 그리 오래된 건 아니지만, 스페이스 원지에선 각종 행사가 열리고 있다. 전시와 공연, 플리마켓, 컨벤션 등으로 다양하다. “공간미가 남다르다 보니 대관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라는 게 김 대표의 전언이다.

지난해 9월에는 도모헌과 스페이스 원지가 연계한 ‘백남준의 기록된 꿈, 그 꿈과의 대화’전을 성공적으로 마련했다. 클래식 공연인 ‘캔들 라이트 콘서트’도 큰 호응을 얻었다. 빈티지 마켓과 디제잉을 결합한 빈티지 문화 축제 ‘아티지 그라운드(ARTEGE GROUND) 인도어 페스티벌-부산’은 젊은 층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개최한 ‘크리스마스 빌리지’ 행사는 11일간 8만여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스페이스 원지가 단순한 문화공간을 넘어 대중적인 명소로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다.

지난해 12월 스메이스 원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빌리지’ 행사 모습. 스페이스 원지 제공
지난해 12월 스메이스 원지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빌리지’ 행사 모습. 스페이스 원지 제공


올해 2월엔 게임업체 ‘프로젝트 문’에서 ‘햄햄팡팡 게임’ 팝업 행사를 선보였는데, 게임 매니아 1만여 명이 방문해 동네가 들썩였다고 한다. 김 대표는 “처음에는 소규모 인원이 참가하는 게임 행사인 줄 알았는데 행사 당일 새벽 4시부터 대기 줄을 서더니 건물을 두 바퀴 돌 정도로 길게 늘어섰다”며 “부산 벡스코에서 진행하는 ‘지스타’(국제게임전시회)의 축소판이었다”고 전했다.

이 밖에 소소한 국내외 대관 행사도 잇따른다. 9월에만 대만관광청 팝업 행사, 베트남 여행객 100명 단체 식사와 공연 관람, 6·25 참전용사 110명 식사 행사 등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안 타도 되니 휠체어를 타고 오고 오신 분도 좋아하세요”라고 깨알 같은 PR로 의견을 보탠다. 현재는 지난달 24일 시작한 부산국제사진제를 오는 24일까지 열고 있다. 곧이어 ‘글로컬프로젝트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전, ‘김길후’전 등이 대기 중이다.

지난달 12일 부산 영도구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토들러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달 12일 부산 영도구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토들러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달 12일 부산 영도구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토들러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지난달 12일 부산 영도구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토들러 콘서트'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재즈 포트’ 등 재즈 상설 공연 시도

올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도 있다. △원지 브런치 콘서트 △토들러 콘서트이다. 지난 4월 첫선을 보인 브런치 콘서트는 추석 연휴가 끝나는 대로 시즌5를 이어 간다.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은 한 달에 세 번 매주 화요일에 여는데 회당 80명 정도 예약받는다. 음료와 음식(뷔페)을 제공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는 프로그램이다.

토들러 콘서트는 지난달 12일 처음 시도했다. ‘0세부터 함께 즐기는 유아 맞춤형 클래식 공연’이다. 엄마 아빠 손 잡고 온 아이들이 신나게 춤추며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졌다. 역시 지역의 청년 예술가와 함께한다. 두 콘서트 모두 유료로 진행하지만, 연주자들 경비 지원에도 빠듯해 식사 등의 비용은 김 대표의 몫이다.

'부산 재즈 포트'를 알리는 리플렛. 스페이스 원지 제공
'부산 재즈 포트'를 알리는 리플렛. 스페이스 원지 제공


11월부터는 부산시 주최로 재즈 상설 공연 ‘부산 재즈 포트’(BUSAN JAZZ PORT)를 시작한다. 일단 11월 8일부터 한 달 간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시범 공연 계획을 공지했다. 올해 1월 국내 최초로 쿠바 아바나 재즈 페스티벌 무대에 섰던 ‘효정리 밴드’의 리더 이효정 보컬리스트와 쿠바 출신 드러머 알라인 사마다 외에 피아니스트 김대규, 베이시스트 박주민이 꾸미는 무대이다. 이에 더해 안유진, 고현아, 민주신, 김대경, 김비오, 홍진표, 전은총, 윤혜성, 김경한 등 부산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대거 함께할 예정이다. 내년엔 ‘부산 영도에서 시작되는 북극항로의 미래’ 대형 프로젝트 외에 ‘셸 위 댄스: 탱고 인 스페이스 원지’ 등을 구상 중이다.

스페이스 원지 김보현 대표 정대현 기자 jhyun@
스페이스 원지 김보현 대표 정대현 기자 jhyun@


“사람이 살아가면서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땟거리만 해결되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맞고요.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림도 보고, 다 함께 가야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경영도 젊은 친구들한테 넘겨줘야죠. 제 역할은 밀알이 되어 꽃을 피우는 일일 겁니다. 직원들에겐 눈을 뜨면 가고 싶어 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러려면 이런 공간이 잘 버텨줘야겠지요. 제 생각은 수익이 나면 회사가 성장하는 데 40%를 쓰고, 이익이 남으면 직원들 복지로 30% 정도 돌리고, 나머지 30%는 사회로 환원하고 싶어요.” 소박하게는 김 대표의 꿈 같지만, ‘문화 르네상스’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원지의 항해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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