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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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란각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살아남은 근대 흔적들
2025.05.02
<정란각>
■ 일본인 특유의 미적 감각 살린 정란각
부산 동구 수정동 고관 입구의 음식점 정란각. 1939년 철도청장 관사로 지어졌다는 고급 일식 건물이다. 70년이 다 된 건물이지만, 공들인 흔적은 시간의 더께 속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석축이다. 돌가장자리를 따서 한번 더 다듬은 뒤 쌓아올렸는데, 기자와 동행한 동아대 김기수 교수는 "손품이 많이 들어간 가장 고급스러운 '모접기 방식'의 석축"이라 일러줬다. 다다미가 깔린 2층 방에서도 제법 품격이 느껴졌는데, '도코노마'라고 불리는 장식공간이 그것. 액자를 걸거나 도자기를 진열하기 위해 따로 만든 공간이다. 문간방의 역할을 하도록 1층과 2층 사이에 반 2층의 공간을 둔 것도 특이한 내부구조다. 꽃장식으로 멋을 부린 일본식 석등이며, 양식 건물 모서리의 화려한 장식에서 일본인 특유의 미적 감각이 엿보였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고관에는 정란각 같은 일식 건물들이 많았다. 한데 빌라형 건축 붐이 일면서 빌라를 지을 수 있는 큰 집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란각은 그 와중에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일식 건물로, 최근 등록문화재라는 어엿한 이름까지 얻었다.
■ 등록문화재 제도
등록문화재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아까운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할 필요성 때문에 2001년 제정된 제도다. 정란각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서 보존에 좀 더 힘이 실어졌다.
사실 그동안의 지정문화재 제도는 재산권 행사를 제한하고, 해당 건물뿐만 아니라 주변 건물까지 건축을 제한하는 규제 위주의 정책으로 반발을 사왔다. 사유재산을 보장하면서도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는 유연한 등록문화재 제도의 필요성이 제기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소유주의 동의와 관계없이 지정하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등록문화재는 소유주의 동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보존이나 활용에도 융통성이 많은 편이다. 최근 돌담, 간이역, 예술가들의 가옥과 작품무대, 고전영화와 염전도 등록 예고되는 것처럼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상들과 근대 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것들이 문화재의 대열에 속속 합류하는 중이다.
등록문화재 제도 도입은 일본의 사례가 참고가 됐다. 일본은 지난 5월 말 현재 6천64건의 등록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초창기라 등록에 급급한 상태. 7월 11일 현재 전국적으로 등록문화재는 총 340건. 전남이 59건으로 가장 많고 부산 6건, 경남 34건, 울산 5건이다. 부산 울산의 경우, 등록문화재 지정의 첫발을 떼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송정역>
■ 부산의 등록문화재
부산에선 정란각(제330호) 외에도 일제시대 경남도청으로 지어졌던 2층 벽돌기와의 서구식 르네상스 건물인 부산 임시수도정부청사(서구 부민동·제41호)가 일찌감치 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경사가 완만한 박공지붕을 역사의 우측 지붕 위에 얹어놓고 있는 1940년대 전형적인 간이역인 송정역(해운대구 송정동·제302호), 1910년 부산에 본격적인 상수도 시대를 열게 했던 복병산 배수지(중구 대청동·제327호), 1927년 일본 보안대 건물로 신축됐던 옛 경남상고 본관(서구 서대신동·제328호), 1932년 부산서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근대 오피스 빌딩의 전형인 한전 중부산지점(서구 토성동·제329호)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록문화재로 이름을 올렸다.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의 실험
이중 동아대박물관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국·시비 59억 원을 포함해 109억 원의 사업비로 리모델링 중인 부산임시수도정부청사는 등록문화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원형 그대로 보존하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외관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얼마든지 고쳐 쓸 수 있다는 등록문화재의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다.
어느 시점에서 복원을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1925년 처음 경남도청으로 사용될 당시 건물은└┘형태였다. 그러다 1931년 양날개 부분이 증축되고 1941년에는 ㅁ자형으로 변했다. 건물은 애초 벽돌로 지어 한계가 있었다. 진도3의 지진에도 건물이 흔들렸고, 현관 부분은 비가 새 백화현상이 나타났다. 동아대박물관으로 재활용할 경우 전시될 국보와 보물의 안전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몇 차례 자문회의를 거쳐 건물은 일제시대 경남도청 당시 모습으로 복원하되 외형만 남겨두고 내부는 완전히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지정문화재였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용할 수 있는 옛날 벽돌은 그대로 둔 채 새 벽돌로 함께 보강해 옛 것과 새 것이 자연스레 드러나도록 했고, 삐죽 튀어나온 철근이며 통나무같은 옛날의 흔적도 건물에 그대로 살렸다.
'내부는 100년 뒤를 내다보고 최신식으로 설계하고, 외부는 100년 전 것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원칙에 따른 거다. 사용하면서 부가가치를 만들겠다는 등록문화재의 실험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상헌 기자
※게재일 : 2007-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