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슐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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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구 해공...야키토리집에서 발견한 토종닭 매력
조용한 민락동 주택가에서 심상찮은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홀려 ‘야키토리 해공’에 들어서는 순간 분명 처음인데, 처음 아닌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치마키를 머리에 두른 요리사의 숯불 앞 부채질, 불 조절을 위한 사케 뿌리기 퍼포먼스까지. 서면 굴다리 근처에서 ‘소설담’이란 이름으로 야키토리집을 5년간 운영한 김승현 대표였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토종닭 야키토리집’이다. 말해놓고 보니 모순 어법 아닌가. 야키토리는 이름부터가 일식 요리인데, 굳이 재료를 토종닭으로 쓰는 이유가 뭘까. 소설담 시절 육계(肉鷄)를 내다 어쩌다 토종닭으로 한번 해 봤더니 단골들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김 대표는 그게 깨달음으로 다가와 전국의 농장을 돌아다니며 닭에 관한 공부를 했다.
‘야키토리 해공’ 김승현 대표.
토종닭은 질기다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여름철 계곡에서 파는 타이어처럼 질겼던 토종닭은 폐계일 가능성이 높다. 노화로 더이상 알을 못 낳게 된 닭. 또는 늙어서 고자가 된 수탉이란 이야기다. 모두가 즐기는 치킨을 비롯해 우리가 먹는 닭은 거의 육계다. 김 대표는 “육계를 발골해 보면 살이 하얗다. 하지만 토종닭은 다리살만 발라도 벌겋다. 토종닭의 육질은 단단하고 씹다 보면 구수한 맛이 난다”라고 말한다.
육계와 토종닭은 품종도 다르고 사육 기간에서도 차이가 난다. 육계로 태어나면 한 달 만에 생을 마감하니 제대로 맛이 들 시간이 없다. 토종닭은 그보다 사육 기간이 몇 배나 되니 사룟값도 그만큼 많이 들어가 가격도 비쌀 수밖에 없다. “이 가격이면 00치킨이 몇 마리인데, 차라리 한우를 먹으러 가지….” 해공에 따라왔다 계산서를 보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우만큼이나 토종닭의 몸값도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

꼼장어 꼬치구이.
‘해공’은 일본 스타일을 내세우진 않지만, 일본에서 영향받은 사실은 인정한다. 일본에서 간은 ‘구마모토, 날개는 나가사키’라는 식으로 부위별로 세분화해 유통한다. 심지어 우리는 불법인 닭사시미를 즐길 정도다. 해공의 시그니처 메뉴인 꼼장어 꼬치구이도 짚불에 굽는 ‘와라야키’ 방식을 응용했다. 꼼장어 꼬치구이는 향이 공간을 지배할 정도로 강렬하다. 이렇게 탱글탱글한 식감의 꼼장어는 어디서도 먹어보지 못했다. 닭고기 꼬치에 물릴 무렵 나타난 꼼장어는 싱싱한 활력을 주고 갔다. 무릎 연골 꼬치의 오도독한 식감도 다시 생각난다.
해공은 ‘야키토리 비스트로’를 내세울 정도로 와인과의 매칭에 진심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닭고기를 많이 먹는데, 대개 와인과 함께 즐기는 방식을 보고 나서 방향을 정했다. 대기업에서 잘나가던 회사원이었던 김 대표는 “불 앞에서 얘기하는 게 재미있어 야키토리에 빠졌다”라고 고백했다. 덕분에 해공은 2024년부터 미쉐린 ‘셀렉티드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불 앞에서 토종닭의 진한 매력에 빠져 봐도 좋겠다.
박종호 기자
※게재일: 2025-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