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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한 주말]극장에서 듣는 ‘올드보이’ OST의 감동…영화의전당 마티네

2025.03.28

‘마티네’(matinee)는 프랑스어로 ‘아침’을 뜻하는 ‘마탱(matin)’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현대에 들어선 주로 평일 낮에 하는 공연을 마티네라고 합니다.

부산에서 즐길 수 있는 마티네 공연은 다양합니다. 주로 부산문화회관에서 하는 공연들이 잘 알려져 있는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역시 수년째 ‘영화음악’을 주제로 한 마티네 공연을 진행 중입니다. 올해에도 8개월 치 프로그램이 마련되었는데요. 그 첫 포문을 여는 3월 공연을 직접 보고 왔습니다.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에서 호스트 심현정 영화음악감독(맨 오른쪽)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에서 호스트 심현정 영화음악감독(맨 오른쪽)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지난 25일 오전,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로비는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 관객으로 북적였습니다. 오전 시간대라 장노년층 비중이 높기는 했지만, 젊은 세대도 적지 않았습니다.

‘올드보이, 운명과 복수의 선율’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공연은 인기가 많을 법했습니다. 영화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올드보이>(2003)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은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엔딩곡인 ‘라스트 왈츠’는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수준입니다. 그런 올드보이 OST를 실제 연주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25일 마티네 공연이었습니다.

이날 공연은 이제껏 본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일반적인 클래식 공연과 달리 극장 전체가 암전이 되고, 무대 뒤편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 <올드보이> 오프닝 신이 재생됩니다. 영상이 멈춘 직후엔 심현정 영화음악감독의 지휘에 따라 현악기 중심의 ‘부산 필름 뮤직 오케스트라’가 이 장면에 삽입된 OST인 ‘Somewhere in the night’을 연주합니다. 연주자들이 자리 잡은 무대에만 따뜻한 황색 조명이 켜지니 몰입도가 큽니다. 악보를 밝히기 위한 작은 백색 조명들도 귀엽고 마치 별빛을 보는 듯 아름답습니다.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 호스트인 심현정 영화음악감독의 프로필과 오케스트라 정보. 영화의전당 제공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 호스트인 심현정 영화음악감독의 프로필과 오케스트라 정보. 영화의전당 제공


첫 곡을 짧게 연주한 뒤에는 심 감독이 무대 앞에 서서 관객과 인사를 나눕니다. 심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맺은 부산과의 인연을 언급한 뒤 현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를 보냈습니다.

‘올드보이’ OST 작곡에 직접 참여한 심 감독은 다음 곡에 대한 소개와 함께 영화의 내용도 간략히 설명해준 뒤 다시 지휘석으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곡을 연주하기 전에도 영화 속 장면이 잠시 스크린에 재생됩니다. 삽입곡을 연주할 때에는 스틸컷을 슬라이드 쇼로 연이어 보여줍니다. 음악만 들을 때보다 오히려 집중이 잘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올드보이’ OST는 장르 특성상 단조 곡들로 구성돼 있어 비장하고 무거운 곡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 곡 중 ‘Frantic’과 ‘Kiss me deadly’는 극적인 전개가 돋보였습니다. 특히 첼로 연주로 시작하는 ‘Kiss me deadly’는 음울한 느낌을 제대로 살린 섬세한 연주와 완급 조절이 매력적입니다.

기대했던 주요 곡인 ‘The old boy’의 강렬한 전자 비트는 극장 스피커로 재생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현장 연주와는 약간의 이질감이 들기는 했지만 절도 있는 현악기 연주는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 심 감독의 지휘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비트에 맞춰져 있는 점은 조금 어색했습니다.

가장 유명한 ‘The last waltz’는 역시 대단했습니다. 클라리넷 연주로 시작해 현악기 연주로 이어지는 멜로디가 감동적입니다. 리듬감을 더하는 콘트라베이스의 존재감도 빛납니다.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에서 호스트 심현정 영화음악감독(가운데 마이크 잡은 사람)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경건 부산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에서 호스트 심현정 영화음악감독(가운데 마이크 잡은 사람)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이날 심 감독은 제작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털어놨습니다. 영화 내용이 워낙 음울하다 보니 심 감독은 작곡 과정에서 우울증을 겪고 성격도 거칠어졌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심 감독은 ‘올드보이’ 내용이 현대극이 아닌 고대 그리스나 셰익스피어의 비극 같은 작품이라 생각하며 작업에 임했다고 합니다. 특히 고양이를 입양해 정서를 순환한 덕에 영화가 끝난 뒤에는 원래의 성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답니다.

심 감독은 “이 영화가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작품”이라며 “영화음악 업계에 들어오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야심 차게 작업했고, 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다면 나는 영화음악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미국 뉴욕대 유학 당시 공부한 새로운 사조였던 미니멀 음악이 ‘올드보이’ 작곡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마지막 곡 연주가 끝난 뒤 객석에선 앙코르 요청이 쇄도했고, 심 감독은 한 곡을 더 지휘하는 것으로 화답했습니다.

2025년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 월별 프로그램표. 영화의전당 제공
2025년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 월별 프로그램표. 영화의전당 제공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는 ‘문화가 있는 날’인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열립니다. 가격은 전석 2만 원으로, 영화의전당이나 인터파크 티켓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습니다. 가격은 전석 2만 원입니다.

이날 기자는 1층 앞쪽 가운데 좌석인 5열 15번에서 관람했는데. 가까이에서 연주를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현악기 연주자들의 뒤에 앉은 관악기 연주자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2층에서 관람한다면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선호도에 따라 좌석을 고르면 되겠습니다.

오케스트라는 대규모는 아니지만, 2만 원이라는 가격대를 생각하면 호화스럽습니다. 클라리넷, 트럼펫, 트럼본, 퍼커션,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다양한 악기로 풍성한 사운드를 구사합니다. 전체적으로 절제미가 돋보이는 섬세한 세기 조절과 절도 있는 합주에서 나오는 박력이 포인트입니다.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가 끝난 뒤 ‘부산 필름 뮤직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지난 25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진행된 ‘심현정의 11시 영화음악콘서트’가 끝난 뒤 ‘부산 필름 뮤직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관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마티네 공연 티켓 소지자는 하늘연극장 로비에 있는 뤼미에르 카페에서 음료(커피 혹은 캐모마일 차)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공연장에는 음료를 반입할 수는 없으니, 공연 시작 전에 미리 다 마시거나 아예 끝난 뒤에 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칙적으로 공연 시작 뒤에는 입장이 불가하니 여유 있게 도착해야 합니다. 주차는 4시간까지 무료입니다.

올해 영화의전당 마티네 공연 프로그램은 오는 11월까지 예정돼 있습니다. 4월에는 ‘그때 우리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로 ‘늑대소년’(2012년) ‘그해 여름’(2006년) 등 멜로 영화에 삽입된 곡들을 연주합니다. 5월에는 가족 영화들에 삽입된 곡들이 세트리스트에 올라있습니다. 환경의 달인 6월에는 ‘북극의 눈물’을 비롯한 눈물 시리즈 다큐멘터리 삽입곡들이 준비돼 있습니다.

심 감독이 작업한 곡만 공연하는 건 아닙니다. 오늘의 심 감독을 만든 영화와 음악들도 무대에 오릅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1962년)와 마이클 만 감독의 ‘라스트 모히칸’(1992년)을 연주하는 7월 공연과 ‘화양연화’(2000년) ‘대부’(1973년)가 포함된 10월도 인기가 많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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