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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요 어때

부산 요 어때

백양산 운수사...'해인사 불 끈다'고 놀림받던 '팔푼이' 우운대사 어디에?

 

 

백양산의 보배인 운수사 대웅전.

 

백양산이 가을의 끝을 향해 타오르고 있다. 늦가을의 보배를 품은 백양산이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한다. 백양산이 부르는 11월의 초대는 거절하기가 자못 어렵다. 백양산에는 보배와 같은 단풍길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늦가을의 백양산은 보는 것보다 밟는 것이 아름다웠다. 숲길을 사부작사부작 걷자 낙엽이 사각거리며 부서진다. 이 울림 속으로 스트레스는 빨려 들어가고, 그 대신 여운과 행복이 채워진다. 이렇게 단풍은 낮은 곳을 향해 떨어지는 낙엽이 되는 것은 물론, 제 몸조차 부서지는 소신공양으로 백양산의 숲길을 보배롭게 만든다.

 

백양산이 품은 또 다른 보배들은 운수사와 선암사다. 백양산은'운수산' 혹은 '선암산'으로 불린다. 백양산 자락에 있는 두 산사(山寺)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백양터널을 사이에 두고 서북쪽에는 운수사, 동남쪽에는 선암사가 마주 보고 있다. 운수사와 선암사는 백양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는 고찰이다. 그 가운데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운수사 대웅전은 범어사 대웅전, 장안사 대웅전 등과 함께 부산의 오랜 불교사를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운수사 경내에는 대웅전이 백양산을 병풍처럼 두른 채 씩씩한 자태로 서 있다. 백양산이 운수사를 품었고, 운수사가 대웅전을 안은 모습이다. 조선 전기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1660년에 다시 세운 건축물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작은 규모이지만 위엄과 기품이 서려 있다. 좌우에는 용왕각과 삼성각이 뒤로 물러선 채로 대웅전을 받들고 있다. 운수사 대웅전은 백양산과 닮았다. 백양산을 작게 축소하여 건축물로 옮겨 온 게 바로 이 건축물이었다. 백양산은 북구, 사상구, 부산진구에 넓게 걸쳐 있으나 무섭게 용솟음치지 않았으며, 화려함을 뽐내지도 않는다. 단층 맞배지붕을 이고 기둥에만 주심포를 얹은 운수사 대웅전은 담백하면서도 절제된 백양산을 빼닮았다.

 

운수사가 대웅전을 안은 것처럼 대웅전도 소중한 보배를 보듬었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석조여래삼존좌상이 그것이다. 이 문화유산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왼쪽의 관음보살과 오른쪽의 대세지보살이 나란히 앉아있는 불상이다. 18세기에 제작된 이 삼존불 좌상은 운수사 대웅전처럼 알맞은 크기에 위엄과 격식을 갖췄다. 작지만 야무진 모습이 인상적인 운수사 불상은 작고 긴 눈을 통해 세상의 보배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옥에는 꼭 티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십여 년 전 건립했다는 대웅보전은 눈에 참 거슬린다. 산 중턱에서 큰 규모로 치솟은 이 건축물은 백양산의 산세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운수사 대웅전의 아름다운 정취도 빼앗고 있다.

 

운수사에서 전래하는 우운대사 설화는 진정한 보배를 성찰하게 한다. 운수사에는 모자란 듯이 보이는 팔푼이 스님이 살았다고 한다. 운수사 승려들은 이 스님을 업신여겨 궂은일을 다 시키곤 했다. 하루는 팔푼이 스님이 밤중에 나와 황급히 물을 바가지에 담아서 서쪽으로 뿌리는 게 아닌가. 스님들이 무엇을 하느냐고 묻자 해인사에 불이 나서 끄는 중이라 답했다. 모두 정신이 나갔다고 비아냥거리며 무시했다. 그런데 실제로 해인사에서 화재 소식이 들려왔다. 큰불이 났는데 동쪽에서 갑자기 구름이 몰려와 장대비가 내려 다행히 불이 꺼졌다는 것이다. 이후로 운수사 스님들은 팔푼이 스님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비와 구름을 뜻하는 우운대사(雨雲大師)로 불렀다고 한다. 이 설화는 바보같이 보이는 스님이 실은 신통력이 뛰어난 고승이며, 운수사의 빛나는 보배였음을 말해 준다.

 

류승훈 부산근대역사관 학예연구사

 

※게재일 :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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