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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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홉산...부담없이 즐기는 조목조목한 산세
2025.05.08

아홉산 일곱 번째 봉우리에서 여덟 번째 봉우리로 이동 중에 바라 본 회동수원지 모습.
수 년 전만 해도 일부 산악인들이 '그들만의 코스'로 남겨놓을 정도로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곳이었지만 몇 년 사이에 꽤 유명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부산 시내의 산으로 등산을 간다고 하면 금정산, 장산, 승학산 정도다. 아홉산은 여전히 부산 안에서도 '마이너'다. 그러나 정작 산을 올라 보면 그만한 산도 없다. 비록 정상의 높이는 해발 365m로 낮은 편이지만 산세가 오목조목해 걷는 맛이 제법이다. '산은 걷는 게 아니라 오르는 것'이라 말하시는 분들. 들머리에서 최초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경사는 꽤 가파른 편이어서 오르는 맛도 있다. 반면 정상을 지나면 평평한 숲길이 이어져 가족들이 함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산행 코스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아홉 개의 봉우리(산 이름이 왜 '아홉산'인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된다)를 오르고 내리며 타는 재미가 일품이다. 또 있다. 산행 중 곳곳에서 회동수원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조금씩 다른 각도에서 보는 호수의 풍경이 산행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부산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위치한 식당 '밤나무집' 앞마당을 들머리로 해 제1봉에서 제9봉까지 아홉 개의 봉우리를 지나 날머리인 금정구 회동동 동대재 앞까지 5.1㎞의 거리를 3시간 동안 걸었다. 3시간이면 가족 산행으로도 적당한 시간이다.
산행은 '밤나무집' 뒤편 포장길을 걸어 올라가면서부터 시작. 조금만 올라가면 산 쪽으로 밤나무 숲이 있고, 시작부터 '입산금지' 표지판이 '떡'하니 서있다. 허가 없이 입산하면 과태료가 20만 원이란다. 그럼 허가를 받으면 된다는 말? 산행대장은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잔다. 그런데도 계속 마음에 걸려 기장군청에 전화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5일 부로 입산금지 기간이 끝나면서 아무나 올라가도 괜찮다"는 답변이었다.
"그럼 표지판을 얼른 치우든지, 아니면 기간을 명시를 해놓든지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따진 뒤 전화를 끊었다. 대부분의 산꾼들이야 '입산금지' 표지판을 너무 무시해서 탈이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아홉산 초입에 '입산금지' 표지판을 보고 신경이 쓰인다면 여름 동안은 괜찮으니 무시해도 좋다.
어쨌든 다시 산행. 표지판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비석 하나 없는 10여 기의 묘지가 나온다. 묘지 왼쪽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 경사가 급격히 가파르게 변한다. 이후 20분 정도는 가파른 경사길. 다행히 '갈 지(之)' 자로 길이 나 있어 경사를 조금이나마 완만하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10분 정도 오른 후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중간쯤 큰 바위로 된 작은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시야가 확 트인 곳이 나온다. 철마면 일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가파른 길이 끝날 무렵 제1봉에 도착한다. 아홉 개의 봉우리 중 가장 높은 곳. 해발 365m의 높이다. 따로 정상석은 없다. 대신 나뭇가지에 '그 산에 가고 싶다 365m'라고 쓰인 작은 팻말이 걸려 있다. 아래에 '산, 그리움'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니 어느 산악회의 이름인가 보다. '○○산악회'보다는 좋은 이름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산을 오르기 전 사전 조사에서 이 산의 해발이 360m라고 들었다. 다시 한 번 GPS를 확인해 본다. 365m다. 서쪽으로 금정산 고당봉이 손에 잡힐 듯하다.
날씨가 제법 더워졌다. 첫 번째 봉우리까지 오는 데 땀이 흥건하다. 아직 여덟 개의 봉우리가 남았는데….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제부터는 약간의 오르내림을 가미한 평탄한 숲길이 이어진다. 제1봉을 지나 4~5분가량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주의! 우리가 가야할 길은 왼쪽이지만, 리본은 오른쪽 길에 훨씬 많이 달려 있다. 바로 회동수원지로 내려가는 길. 최근 회동수원지 인근에 걷는 길이 조성되면서 이쪽 길이 인기가 많아졌다고. 5시간 정도 소요된다니 다음 번에는 이쪽 코스도 한 번 둘러봐야겠다.
어쨌든 우리는 11시 방향 좌회전. 내려가는 듯 어느새 다시 올라가더니 제2봉이다. 소나무 숲에 가려 제1봉만큼 전망이 좋지 않다. 다시 숲길을 걷는다. 재선충 피해로 비닐 커버를 씌워놓은 소나무 무덤이 많다. 유독 부산에 많은 듯하다. 소나무 숲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제3봉. 역시 나무가 많아 전망은 별로다. 산길 오른쪽으로 위치해 유심히 살펴야 세 번째 봉우리임을 알 수 있다.
제3봉까지 오는 데만 산행 시작으로부터 약 1시간이 걸린다. 다시 5분쯤을 더 걸으면 제4봉. 여기도 마찬가지다. 제2봉부터는 봉우리 정상이라는 느낌보다 숲 속 작은 언덕 위라는 느낌이다.
아홉 개 봉우리를 오르는 재미가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되물으시는 분.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말일 뿐이다. 봉우리를 찾아가며 '여기가 몇 번째 봉우리일까' 생각하며 걷는 재미는 분명 색다르다. 그리고 제4봉을 지나면서부터 시야가 확 트인다.
제5봉을 지나 여섯 번째 봉우리부터는 바위 봉우리다. 흔히들 이 곳을 아홉산 정상이라 부르지만 사실 처음 오른 봉우리보다 높지 않다. 조그마한 돌(바위라고 하기에도 무색하다) 위에 '아홉산 353m'라고 새겨져 있다. 정상석인 모양인데 그다지 볼품은 없다.
그러나 내려다보는 전망으로 비교하자면 여기가 정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회동수원지와 금정산, 쭉 뻗은 번영로와 구서동 아파트 단지까지…, 이 모든 전망이 한 폭 안에 들어온다. 카메라를 들이대어 보지만 화각이 좁은 것이 안타깝다.
제6봉을 지나 조금만 내려오면 방 하나 크기만한 작은 분지가 나온다. 정면으로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밑동이 가지가 갈라지듯 일곱 개로 갈라져 언뜻 보면 여러 그루가 서있는 듯하다. 이 나무 2시 방향 소로로 방향을 정한다. 조금만 내려가면 제7봉. 이곳 역시 전경이 좋다. 갈수록 회동수원지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아니, 실제로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부터는 주로 내리막길. 여덟 번째 봉우리를 지나면 높이 1m 정도의 작은 돌탑이 나온다. 돌탑을 지나 조금만 더 내려오면 이 산에서 회동수원지를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는 포인트를 만난다. 봉우리는 아니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이 회동수원지 물 위로 얼핏 내비친다. 목가적인 느낌마저 든다. 물론 그런 느낌을 유지하려면 수원지 뒤로 보이는 아파트 숲은 애써 무시해야만 한다.
마지막 봉우리인 제9봉에는 특이하게도 '하영봉 260m'라는 작은 표지석이 서있다.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내려가는 길 역시 첫 봉우리를 오르는 길 만큼이나 가파르다. 가파른 길을 10여 분 내려오다 보면 송전탑이 나온다. 송전탑을 지나 동아줄을 잡고 좀 더 내려오면 임도. 임도를 따라 걷기보다는 임도를 건너가 다시 숲 속으로 접어든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시냇물 소리. 그대로 시냇물을 건너면 상수원 보호구역임을 나타내는 커다란 간판을 볼 수 있다. 간판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2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 바로 날머리인 동대재 입구다.
글·사진=김종열 기자 / 그래픽=노인호 기자
※게재일 : 2010-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