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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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수정산 둘레길 야간산행...광안·부산항·남항대교 한꺼번에 조망
2025.05.02
구봉산에서 내려다본 부산항 야경. 부산항대교(가운데)와 남항대교가 영도를 중심으로 횡으로 연결된 광경이 이채롭다. 왼쪽에 광안대교도 보이지만 앵글의 한계로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정대현 기자
빛과 어둠!
상극이자 상생이다. 그래서 빛 없는 세상이 불안할 때 어둠 없는 세상도 마냥 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도시인들은 너무 오랫동안 빛에 노출되고 있다. 잘 때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시간을 빛 속에서 지낸다. 어둠 속을 걸어 본 기억이 아련하다.
폭염의 계절에 어둠을 찾았다. 어둠의 세계는 생각보다 시원하고 포근했다. 보이지 않으면 불안할 것 같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감각 기관들이 하나둘 어둠 속에서 되살아났다. 아주 작은 풀벌레 소리, 볼을 스치는 바람, 숲 속의 오묘한 향기까지 느껴졌다. 오랫동안 잊힌 원시의 감각들이고, 야간산행이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자연의 귀한 선물이었다. 야경과 열대야 피하기는 차라리 덤이 됐다.
■ 눈보다 귀 열고 걷는 산길
코스는 부산 동구 '구봉산∼수정산 둘레길' 6.5㎞로 잡았다. 금수사를 들머리로 초량6동 산림(산불감시) 초소∼구봉산(404.6m) 봉수대∼도등∼수정4동 산림초소∼수정산 배수지∼가족체육공원∼보광사 순으로 이어가는 코스다.
이는 동구청이 설계한 둘레길(9.43㎞)과 겹치지만 전체적인 윤곽은 분명히 다르다. 동구청 둘레길인 일명 '씽씽로드'는 수정4동 산림초소에서 수정산 임도를 거쳐 초소로 돌아오는 제1코스(5.0㎞)와 가족체육공원에서 출발해 장승골, 수림정, 안창마을, 보광사를 지나 체육공원으로 원점 회귀하는 제2코스(4.8㎞)로 나뉜다.
즉, 두 구간을 한꺼번에 이어 돌기 어렵고, 주간보다 속도가 떨어지는 야간에는 너무 긴 코스다. 산&길은 원점 회귀가 아니라 일직선의 6.5㎞ 구간으로 꾸몄다. 물론 이것도 여름철 야간산행치고는 만만치 않다.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 산행은 10시를 훌쩍 넘겼다.
■ 광안·부산항·남항대교 한꺼번에 조망
야간산행은 어둠 속을 걷는 까닭에 볼거리를 찾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그럼에도 몇몇 지점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야경과 어둠을 밝히는 도등, 플래시를 비출 때마다 함께 호흡하는 수목 등은 그동안 빛의 세계에만 살면서 까맣게 잊고 있던 '별세계'였다.
그중에도 압권은 구봉산 봉수대와 수정산 배수지 옆 전망 덱, 주거한계선 코스 등에서 내려다보는 부산항과 시내 야경이다. 특히 구봉산 봉수대는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등 부산 3대 대교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부산 최고의 조망처다.
수정산 배수지 옆 전망 덱에서는 개장을 앞두고 있는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과 감만부두, 신선대부두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용운사에서 보광사까지 이어지는 '주거한계선' 코스에서는 동·남·부산진구의 밤 풍경이 한없이 펼쳐진다.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오른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와 동구 산복도로를 이어 달리는 나트륨 가스 가로등의 샛노란 군무도 이색 볼거리다.
어둠 속의 도시 야경은 낮 풍경과 확연히 다르다. 어둠 때문에 모든 것이 오히려 더 경건하고 아름답다. 어둠이 없다면 결코 즐길 수 없는 빛의 연회다. 이 때문에 빛의 세계로 돌아올 즈음에 오히려 약간의 아쉬움이 든다.
야경은 아니지만, 야경 이상의 볼거리도 하나 있다. 구봉산 기슭의 60m 높이 철탑 위에 설치된 도등(leading light)으로, 완전히 깜깜한 밤하늘에 그것만 초록으로 빛나는 광경은 마치 우주의 외계 불빛을 우연히 발견한 것 같다. 도등은 북항에 진입한 선박의 항로 유지를 돕는 등광시설인데, 2년 전 구봉산과 엄광산에 각각 하나씩 설치됐다.
구봉산과 수정산은 물이 많기로 유명하다. 이번 코스에서도 두 곳의 약수터(새구봉천, 구덕꽃동산)를 지났다. 물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 야생과의 조우… 힘들면 언제든 탈출
도심 산행의 최대 난제는 길이다. 역설적이지만, 길이 너무 많아 되레 길을 잃는 사건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 코스도 마찬가지다. 곳곳에서 치고 올라온 길이 너무 많다. 이 때문에 들머리부터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길을 잃을 우려가 크다. 특히 금수사와 초량6동 산림초소를 지나 장군사로 가는 돌길 위에서는 도중에 반드시 흙길로 빠져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산&길의 GPS 트랙과 이정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주능선부터는 이정표가 잘 돼 있다. 그럼에도 갈림길이 많아 주의해야 한다. 주능선부터 구봉산까지는 '구봉산 봉수대'를 좇고, 구봉산 봉수대부터 수정4동 산림초소까지는 '수정4동 산림초소'나 '안창마을'을 따른다. 산림초소와 안창마을이 갈리는 이정표에서는 '산림초소'를 선택하고, 산림초소부터는 '가족체육공원'이나 '보광사' 이정표를 확인하는 게 좋다.
주거한계선 코스도 만만치 않다. 길은 편하지만 간혹 새 길과 교차하는 지점에서 입구를 찾는 데 애를 먹는다. 특히 수정산 배수지에서 주거한계선 코스로 진입하는 구간은 꽤 까다롭다.
용운사(옛 천왕사)를 찾은 뒤 그 벽에 표기된 화살표 방향을 따라야 한다. 가족체육공원에서는 주차장 위쪽으로 이어진 길을 찾고, 그 체육공원 끝자락에서는 3개의 절(연화사, 원각사, 백운사) 중 가장 위쪽에 있는 백운사 옆 좁은 골목(수정공원로 105번길)을 선택해야 한다.
숲길을 거닐 때 간혹 수목들 사이에서 푸른 불빛을 목격할 수 있는데, 놀랄 일은 아니다. 길 잃은 고양이나 고라니일 경우가 많다. 야간산행은 야생과의 조우이기도 하다.
참고로 6.5㎞ 구간이 힘들다면 주거한계선 코스에서 탈출구를 찾는 게 좋다. 도로로 곧바로 내려서는 통로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글·사진=백현충 선임기자 / 그래픽=노인호 기자
※게재일 : 2015-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