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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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학산~구덕산 야간산행...시원한 산바람에 휘황한 도시 야경
더워도 너무 덥다. 매년 여름이면 나오는 말이긴 하지만, 올해처럼 더운 해가 또 있었나 싶다. 에어컨을 켜놓아도, 샤워를 해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불볕더위다. 지긋지긋한 더위에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고 있다면 잠자리를 박차고 산으로 나서 보는 건 어떨까?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야간 번개 산행'을 떠나는 거다.
야간 산행은 상쾌하다. 계곡과 숲길, 능선을 따라 에어컨보다 시원한 자연풍이 휘몰아친다. 일사병이나 자외선 노출의 위험도 적다.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 랜턴 빛에 의지해 산길을 걷다 보면 잠자고 있던 오감이 깨어난다. 발아래로 장엄한 불빛의 바다를 이룬 휘황찬란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야간 산행 후 기분 좋은 노곤함 속에 잠에 들면 뇌에서는 멜라토닌과 성장호르몬의 분비가 촉진되기 때문에 면역력 증강과 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한여름 밤의 짜릿한 일탈이 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군 복무 시절 야간 행군의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이다.
사하구와 사상구에 걸쳐 있는 승학산(乘鶴山·496m)은 가을이면 수만 평에 이르는 억새밭이 바람에 출렁이는 장관으로 유명하다. 인근 주민들에게는 '동아대 뒷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둠이 깔린 승학산은 서부산권 최고의 야경 조망 포인트다. 낙동강 하구의 드넓은 갯벌은 석양 아래 금가루로 반짝인다. 사위가 어둠에 잠기면 북항과 남항, 암남공원과 몰운대 위로 색색의 조명이 별이 되어 빛나고, 하단과 명지주거단지의 황홀한 야경이 도시의 밤을 붉게 물들인다.
구체적인 등로는 동아대 승학캠퍼스를 출발해 묘지봉~사상·사하 경계~승학산 정상~헬기장~약수터~승학문화마루터~낙조전망쉼터~재넘이마루~구덕산 정상 갈림길~시약정~참누리아파트를 지나 도시철도 대티역에서 끝을 맺는다. 총 산행거리 8.1㎞에 순수 이동에 2시간 30분, 총 산행에는 4시간이 걸렸다. 도시철도 하단역에 내려 산행을 시작한 뒤 대티역에서 도시철도를 타고 귀가하면 돼 접근성도 좋다.
낙조와 야경을 두루 여유 있게 감상할 수 있도록 오후 6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 기점은 사하구 하단동 동아대 승학캠퍼스 정문이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기온은 29도로 아스팔트에서 뿜어내는 지열이 후끈했다.
캠퍼스 정문 왼쪽 주차장으로 향한다. 포장로를 따라 100m쯤 오르면 우측으로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데크 계단을 지나 자연석을 딛고 오른다. 초반부터 꽤나 힘에 부치는 된비알이다.
10분 뒤 등산로 왼편으로 낙동강 일몰을 조망하기 좋은 돌출바위가 있다. 선홍빛 태양이 뉘엿뉘엿 강 속으로 잠겨든다. 해거름의 태양은 어린 시절 일식 때 아크릴판을 겹쳐 보았을 때처럼 순한 빛을 띠고 있다. 낙동강변이 샛노랗게 물든다.
조망바위를 지나면 길은 한결 순탄해진다. 10분 뒤 능선 갈림길. 우측은 정상으로 곧바로 질러가는 길이다. 직진해서 묘지봉으로 간다. 3분 뒤 쌍봉이 놓여 있는 곳이 묘지봉이다. 이곳에서 왼쪽 길은 등산로가 막힌다. 정상 1.37㎞ 이정표를 따라 우측길로 내려간다.
벤치가 있는 안부를 지나면 다시 능선 오르막이다. 능선을 경계로 우측은 사상구 엄궁동, 좌측은 사하구 하단동이다. 다시 땀을 쏟아 붓는 가풀막이 시작된다. 해발 400m대의 '동네 산'이라고 만만히 봤는데, 45층 빌딩을 계단으로 오르는 것처럼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허벅지는 팍팍하게 굳어 온다. 등에 땀이 흥건하게 밴다.
40분 뒤 405봉에 오르면 된비알은 끝이다. 산바람도 한층 강해진다. 잠시 고개를 돌려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자니 땀이 금방 식어 내리고 한기까지 느껴진다.
산행 시작 1시간 30분. 해거름인가 싶더니 금세 사위가 캄캄한 적막이다. 랜턴을 켰다. 낙동대로를 달리는 차들이 황금색과 붉은빛의 띠를 이루며 연등 퍼레이드를 펼친다. 도심의 빌딩들도 하나둘 불을 켜고 빛의 축제에 합류한다.
바람이 상쾌하고, 공기가 달게 느껴진다. 도심에서 맛보지 못한 공기다. 뾰족 바위 지대를 15분쯤 오르면 승학산 정상이다. 승학산은 고려 말 무학대사가 산천을 두루 살피며 전국을 유랑할 때 산세가 준엄하고 기세가 높아 학이 하늘을 나는 듯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혹자는 을숙도에서 승학산 정상을 바라보면 신선이 학을 타고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도 한다. 낙동강 물은 어둠 속에 잠겨 검은 심연 같다. 하단오거리는 서부산권 최고 번화가답게 고휘도 LED 조명을 켜놓은 것처럼 불빛으로 눈부시다.
앙칼진 돌부리와 사나운 바위를 조심스럽게 비켜가며 20분쯤 내려가면 평탄한 흙길이 시작된다. 억새 능선이다. 억새와 쑥부쟁이가 바람에 춤을 춘다. 귀뚜라미 소리가 한여름 밤의 정취를 더한다. 헬기장을 지나면 3분 뒤 승학산 억새보호 안내 팻말이 있는 정상 갈림길이다. 그대로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향해 직진하면 383봉을 지나 사상 엄궁 쪽으로 내려서 버린다. 우측 길로 가야 하니 주의.
토간수가 흐르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뒤 억새 능선길을 12분쯤 더 가면 부산일과학고등학교에서 올라오는 임도와 합류한다. 5분 뒤 임도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이 팔각정과 편의 시설이 있는 승학문화마루터다.
임도를 따라 488봉을 우회한다. 12분 뒤 부산일과학고가 내려다보이는 낙조전망쉼터에 닿는다. 쉼터에서 11시 방향, 이정표상 서구 꽃마을을 향해 올라간다. 차량 출입 차단기를 지나면 그대로 직진해 내려간다. 10분 뒤 재넘이마루터.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꺾어 구덕산 정상(668m)을 향해 올라간다. 정상은 부산항공무선표지소가 있어서 출입이 안 된다. 이동통신중계탑 앞 갈림길에서 우측 시약산(515m) 방면으로 포장로를 따라 내려간다. 시약산 기상레이더를 정면에 두고 임도를 3분쯤 따라가다 왼편에 차량 출입차단기가 보이면 샛길로 들어선다.
506봉 위에 세워진 시약정은 이번 산행 최고의 야경 포인트다. 구덕운동장, 용두산공원 뒤로 대륙의 관문인 부산항을 가로지르는 북항대교 주탑이 등대처럼 반짝인다. 그 너머 영도대교, 남항대교, 왼편으로 어렴풋한 광안대교까지 색색의 조명으로 부산의 바다를 밝힌다. 부산의 여름밤은 찬란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본격적인 하산이다. 기상전망대 쪽으로 50m쯤 간 뒤 왼쪽 시멘트 포장로를 따라 내려간다. 잠시 뒤 임도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꺾어지는 곳에서 벤치가 있는 1시 방향 샛길로 내려선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내려 영동과 경북, 경남의 고봉준령들을 거쳐 종착지인 몰운대로 이어지는 낙동정맥 상이다. 몇 차례 갈림길을 만나지만 계속 직진한다. 12분 뒤 대티고개 1.5㎞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이 391봉과 383봉 사이 안부다. 우측 샛길로 내려간다. 초소를 지나면 석축을 쌓아놓은 밀양 박씨 가족묘에 닿는다. 왼쪽은 낙동정맥을 계속 타고 대티고개로 가는 길이다. 우측 능선으로 가족묘 석축을 끼고 내려간다. 8분 뒤 이정표가 있는 사거리에서도 그대로 직진. 7분 뒤 참누리아파트 진입로를 만나면 도로를 따라 아파트 입구까지 내려간 뒤 우측으로 100m쯤 더 가면 종점인 대티역이다.
박태우 기자

